토마토로 키운 횡성의 꿈

서울 직장인에서 안흥의 농부로
횡성군 안흥면에서 삼형제농장을 운영하는 김빛나 대표는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이자 약 2,0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농업인이다. 서울의 식품회사 영업팀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긴 준비를 거쳐 횡성에 정착하고 자신의 농장을 일궜다.
식품을 판매하는 현장에서 일하며 좋은 식품의 출발점은 좋은 농산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생산자가 직접 농산물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농업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한 가장 큰 계기는 가족이었다. 세 아이가 자연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1년 횡성에 정착했고, 2024년부터 자신의 농장을 운영했다.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횡성은 김 대표에게 농업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 됐다.
가족의 삶터로 선택한 횡성
김 대표 가족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수도권 접근성, 농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살폈다. 그 결과 횡성을 새로운 삶터로 선택했다. 안흥은 고랭지 특유의 기후환경을 갖추고 있어 토마토 재배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판단했다.
안흥찐빵도 지역 선택에 영향을 준 요소였다. 규모가 크지 않은 농촌마을이 하나의 먹거리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 지역 브랜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가족이 살아갈 곳을 찾는 데서 출발했지만, 농장을 운영하면서 횡성의 농업과 지역자원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까지 고민의 범위가 넓어졌다.
횡성에 정착한 뒤 자연은 가족의 일상이 됐다. 아이들은 계곡에서 놀고 곤충을 관찰하며 농장에서 토마토가 자라는 과정도 지켜봤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농촌의 풍경과 작물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족의 선택에 의미를 더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도시보다 의료시설과 문화시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귀촌했지만 농번기에는 농장 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도 마주했다.
김 대표는 농장 규모를 키우는 일뿐 아니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다. 좋은 농장을 만드는 일과 좋은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을 함께 이루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농사를 짓기 전에 농업을 배우다
김 대표는 귀촌과 귀농을 서로 다른 선택으로 본다. 귀촌이 생활 터전을 옮기는 일이라면 귀농은 새로운 직업을 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2021년 횡성으로 왔지만 곧바로 자신의 농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농업회사법인에서 약 2년 8개월간 근무하며 생산과 유통, 판매 등 농업 전반을 경험했다. 농업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는 한편 농지와 시설, 자금 운용 계획도 준비했다. 2024년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에 선정된 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으며, 이후에도 강원 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학습을 이어갔다.
빠르게 농업에 뛰어들기보다 시작하기까지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은 실제 농장을 운영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는 자산이 됐다.
생산과 경영을 함께 보는 농업
농업회사법인에서 근무할 당시 김 대표는 농산물 생산뿐 아니라 홈쇼핑과 온라인 판매, 수출 업무도 경험했다. 이를 통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과 농업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라는 점을 배웠다.
홈쇼핑 판매를 준비할 때는 농산물의 품질만 좋아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고 포장과 배송 과정까지 관리해야 했다. 토마토 한 상자를 2만원에 판매하더라도 판매액 전부가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비와 인건비, 포장비와 물류비 등을 제외해야 실제로 남는 수익을 계산할 수 있다.
김 대표가 농사를 생산기술로, 농업을 경영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업인은 좋은 작물을 키우는 기술자인 동시에 생산과 판매, 비용을 관리하는 경영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농장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드는 일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시장과 환경을 살펴 고른 토마토
재배 작물을 정할 때도 생산 가능성만 보지 않았다. 무엇을 잘 키울 수 있는지에 앞서 생산한 농산물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수 있을지를 검토했다. 대추방울토마토는 소비층이 넓고 소포장과 택배 판매에 적합해 온라인 직거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안흥의 고랭지 기후 역시 적절하게 관리한다면 토마토 품질을 차별화할 수 있는 조건으로 봤다. 그러나 실제 농사는 예상보다 복잡했다. 온도와 습도, 햇빛, 토양 상태, 병해충 등 동시에 살펴야 할 변수가 많았다.
현재 농장에서는 환경센서와 재배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다만 김 대표는 장비 자체보다 작물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농업인의 관찰과 판단을 더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첫해에 익힌 관찰과 기록
2024년 영농 첫해에는 외부 활동을 줄이고 농장 운영에 집중했다. 가장 중요하게 익힌 기본기는 관찰과 기록이었다. 매일 온도와 습도, 관수량과 작물의 생육 상태를 확인하며 농장 환경의 특성을 파악했다.
잎의 색과 줄기의 굵기, 생장점의 모습처럼 작물에 나타나는 작은 변화도 세심하게 살폈다. 기록이 쌓이면서 작물이 잘 자란 이유와 문제가 생긴 원인을 조금씩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농업의 경험은 단순히 오랜 기간 농사를 지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기록한 뒤 결과를 비교할 때 지식으로 바뀐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첫해에 다진 기본기는 지금도 농장 운영의 중요한 바탕으로 남아 있다.
토마토 4500주를 뽑아낸 시련
2025년 봄에는 농장에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인 TSWV가 발생했다. 총채벌레가 옮기는 이 식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잎에 반점이 생기고 작물이 시들며, 열매에는 둥근 얼룩이 나타난다. 치료약이 없어 감염된 포기를 뽑아야 하고 확산 속도가 빨라 하우스 전체 작물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당시 약 4,500주의 토마토를 정리한 뒤 다시 심어야 했다. 농업인에게 작물을 뽑는 일은 식물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투입한 비용과 노동시간, 앞으로 거둘 것으로 예상했던 수확량까지 포기해야 하는 결정이다.
경제적 손실도 컸지만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정도로 자신감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가족의 삶이 걸린 일이었고 오랫동안 준비해 시작한 농업을 한 번의 실패로 끝낼 수는 없었다. 주변 농업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원인을 되짚으며 재배를 다시 시작했다.
실패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할 수 있다는 교훈이 남았다. 바이러스 피해는 농장을 이전보다 신중하게 운영하는 계기가 됐다.
생산량을 넘어 품질과 신뢰로
바이러스 피해를 겪은 뒤 농장 운영의 중심도 달라졌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농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날씨와 시장가격은 농업인이 뜻대로 바꾸기 어렵지만 품질과 소비자의 신뢰는 꾸준히 쌓을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삼형제토마토 상표를 등록하고 온라인 직거래를 중심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농장의 일상과 재배 과정뿐 아니라 영농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도 콘텐츠로 알렸다. 얼마나 많이 생산했는지만 따지기보다 생산한 토마토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전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했다.
2025년에는 토마토 부산물 활용과 관광·체험을 연결한 사업 구상으로 횡성군 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토마토 생산을 기반으로 가공과 체험까지 연결하려는 계획이 구체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세 아들과 안흥 설화를 담은 이름
삼형제농장이라는 이름은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토마토를 생산하겠다는 뜻을 농장 이름에 담았다.
여기에 안흥에 전해지는 도깨비 삼형제 설화와 삼형제바위 이야기가 더해졌다. 김 대표 가족의 이야기와 안흥의 지역 설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농장 이름에는 도깨비도 놀랄 만큼 맛있는 토마토, 세 아들이 안심하고 먹는 토마토, 안흥과 횡성을 대표하는 토마토라는 의미가 함께 담겼다.
김 대표는 농산물의 기본 경쟁력은 품질이지만 소비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 브랜드에는 사람과 지역의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본다. 삼형제농장의 성장이 안흥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과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토마토와 안흥찐빵의 만남
안흥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찐빵에 지역에서 생산한 토마토를 접목하는 구상도 추진됐다. 크기나 모양 때문에 제값을 받기 어려운 토마토를 가공에 활용하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바탕이 됐다.
2025년에는 지역 업체와 토마토 안흥찐빵 시제품을 개발했다. 둔내 고랭지 토마토축제와 대한민국 농업박람회에서는 시식 행사도 진행했다. 현재는 상품 완성도를 높이고 실제 판매로 연결하기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향후에는 토마토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지역 농산물이 새로운 상품으로 바뀌고 그 상품에서 나온 수익이 다시 지역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연결을 통해 넓어지는 농촌의 기회
김 대표는 농촌에 부족한 것이 많다기보다 아직 서로 연결되지 않은 자원이 많다고 본다. 농촌에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인과 오랜 가공기술을 가진 업체, 지역의 이야기를 잘 아는 주민이 있지만 이들이 연결되지 않아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안흥찐빵축제에서는 청년농업인 7∼8명과 농산물과 먹거리를 판매하는 부스를 함께 운영했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장점을 모으면서 혼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활동도 추진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농촌창업 네트워크 강원·충북 권역 대표로 활동하며 다른 지역의 농업인과 창업가를 만나고 있다. 안흥의 청년농업인들과는 공동영농을 비롯해 토마토 교육관과 체험시설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 농업의 경쟁력은 개별 농가의 노력뿐 아니라 지역 구성원이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하느냐에도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혼자 성장하는 농장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농장을 지향한다.
귀농 전 반드시 살펴야 할 세 가지
김 대표는 귀농을 막연한 전원생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농업은 적지 않은 자본과 노동력, 전문기술이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귀농을 준비할 때 점검해야 할 조건으로는 자금과 판로, 가족과 지역사회가 제시됐다.
- 버틸 수 있는 자금
농업은 첫해부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초기 투자비만 계산해서는 부족하며 생활비와 운영자금,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려해야 한다. - 생산 전부터 준비하는 판로
무엇을 재배할지 결정하는 일만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지 미리 검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 가족과 지역사회
귀농은 직업만 바꾸는 일이 아니라 가족의 생활환경 전체를 바꾸는 선택이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있어도 농촌에서의 삶은 혼자 완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 대표의 경험이다.
청년농에게 전하는 준비의 의미
김 대표는 처음 귀농을 고민하던 자신에게 조언한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준비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실패 역시 계획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오랜 시간 준비했음에도 바이러스 피해를 피하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김 대표는 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동시에 예비농업인과 청년농에게 경험을 나누는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청년에게는 관심 있는 농장에서 한 해가량 일하며 사계절을 직접 경험해 볼 것을 권했다. 재배에서 수확과 판매까지 한 흐름으로 경험하면 농업의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다. 먼저 농업을 경험한 선배와 동료의 조언도 시행착오를 줄이는 중요한 자산으로 꼽았다.
사람이 찾아오는 농장을 향해
삼형제농장의 처음 목표는 좋은 토마토를 생산해 가족과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농업을 경험하고 지역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목표는 점차 넓어졌다.
김 대표는 삼형제농장을 토마토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와 농업을 배우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동료 청년농업인들과 토마토 학교와 체험관, 팜스테이와 카페 등을 연계하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횡성의 좋은 농산물과 농업인에게 교육과 관광, 가공과 문화가 연결되면 농업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토마토 농업·문화·체험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지역 동료들과 단계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세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하려고 선택한 횡성은 이제 김 대표에게 두 번째 고향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됐다. 처음에는 횡성에서 가족과 잘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한 뒤에도 자랑스러워할 농업과 지역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새로운 목표다.
